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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동하는 빛 - 그림 : 새로운 ‘seeing’을 위하여

우리가 무언가를 ‘본다’고 할 때에는 언제나 사물에 반사된 빛을 보는 것이다. 그리고 그 빛의 근원은 태양이다. 동트는 새벽, 한낮, 노을 지는 저녁에 이르기까지, 대기층을 뚫고 들어오는 태양 빛은 하루 동안에도 시시각각 변한다. 우리 주변을 둘러싼 모든 사물은 이 빛의 영향 아래에서 인식되므로, 그 윤곽과 질감, 색감은 매 순간 미묘한 차이를 띤다. 이때 관찰자가 실제로 보는 것은 그가 위치해 있는 시공간에 따라 좌지우지되며, 광원의 위치와 방향, 개수, 색에 따라서 변화한다. 하지만 즉각적인 ‘봄seeing’의 순간에 이 점을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.

정지필의 사진은 이러한 ‘봄’을 둘러싼 전제에 질문을 던지면서 새로운 시각 경험이 가능한 조건을 실험한다. 우선 <태양의 자화상>(2016) 시리즈는 필름 대신 나뭇잎과 해조류 등을 넣고 태양을 촬영한 작업이다. 여기에는 날마다 달라지는 기상 상태와 시간에 따른 빛의 변화가 고스란히 기록되는데, 태양 빛을 활용하여 태양을 찍어 낸 작업이므로 ‘자화상’이라는 제목이 붙었다. 이 각양각색의 자화상들은 ‘봄’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인 태양 자체가 겪는 계속적인 변화를 보여줌으로써,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도 이에 따라 늘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. 또한 은銀 외에도 지구상의 모든 것이 빛에 반응하는 감광 물질이며, 태양 빛을 받아 지표면에 나타나는 자연 현상도 일종의 커다란 ‘빛photo-그림graph’, 즉 (비은염) 사진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보인다. 다음으로, <더 뜨거운 태양>(2019)은 ‘태양의 온도가 지금과 달랐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?’라는 물음에서 비롯된다. NASA가 위성을 통해 촬영한 실제 태양 사진에, 태양의 온도가 현재보다 더 뜨겁거나 차가울 때의 모습을 상상으로 덧입혀 재구성한 사진이다. 이 이미지는 정적이기보다는 동적인데, 앞선 가정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하는 태양의 외관을 번갈아 보여주기 때문이다. 과학적 원리에 근거한 시뮬레이션이자 가상과 현실을 조합한 이 새로운 태양 이미지는, 관람자의 시선을 지구에서 우주 전체로 이동시키면서, 지구에서의 시각 경험이 태양과 관계된 특정 조건 속에서 제한적으로 가능한 것임을 드러낸다. 마지막으로, <더 뜨거운 태양 -스펙트라>(2020) 연작은 근접한 거리에 다수의 태양이 동시에 존재할 경우를 가정한 초상 사진이다. 보통 인물 사진에서는 부드러운 확산광을 정면으로 비추어 얼굴의 주름이나 흠이 묻히도록 하는데, <더 뜨거운 태양 -스펙트라>에서는 오히려 측면광과 직접광이 과감하게 활용된다. 인물의 좌우 측면에 각기 다른 속도로 색이 바뀌는 여러 개의 직접광이 설치되는데, 이 인공조명들은 모두 가상의 태양에 대응된다. 이 복수의 광원이 움직이면서 벽면에 다양한 강도와 농도의 그림자를 드리우고, 인물의 신체에 대비가 강한 색색의 빛을 입히면서 흥미로운 윤곽을 그려 낸다. 여기서는 인물의 개성과 조명의 변수가 우연히 교차하면서, 말 그대로 ‘스펙트럼’이 펼쳐진다. 관람자는 이 스펙트럼을 통해 한 인물이 비밀스럽게 품고 있는 여러 면모를 (장점은 물론 단점까지도)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, 외부의 영향력이 변화함에 따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‘유동적인 정체성fluid identity*’을 목격하게 된다.

 

 

홍예지(hyj0273@naver.com)

 

*진 로버트슨·크레이그 맥다니엘, 『테마 현대미술 노트』, 문혜진 옮김, 두성북스, 2011. 93쪽 참조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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